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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상식

엘리자베스 2세 여왕

by 얌얌제주 | 제주 먹스타그램 2022.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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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길든 짧든 평생토록 국민들 섬기는데 헌신할 것임을 여러분 앞에 선언합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엘리자베스 2세는 1926년 4월 21일 런던의 브루튼가 17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족들은 그녀에게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엘리자베스는 그녀의 어머니의 이름을 따온 것이고 알렉산드라는 증조할머니의 이름을 그리고 메리는 할머니의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가족들은 긴 이름 대신 그녀를 릴리벳이라고 불렀습니다.


한편 왕이 될 교육을 받은 큰 아버지 에드워드 8세는 왕위에 오른지 일 년도 못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포기하였고 릴리벳의 아버지인 조지 6세는 왕위에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왕이 되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릴리벳은 아버지 조지 6세처럼 되지 않기 위해 그려의 할머니인 메리 왕비와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왕비로부터 왕에게 필요한 교육을 받게 됩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성장과정]
할머니 메리 왕비는 엄격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왕실의 위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릴리벳이 13살이 되던 해 세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런던이 독일 비행기에 폭격을 당하지만 왕과 조국을 떠나지 않고 누구보다 모범을 보이며 애국심을 발휘하게 됩니다.
릴리벳은 열여덟 살이 되자 아버지 조지 6세를 귀찮게 졸라대며 자신에게도 조국에 봉사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 딸을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 보낼 수 없었던 조지 6세는 그녀를 영국 여자 국방군에 입대시켰고 그녀를 전투부대에 배치하는 대신 구호품을 전달하는 서비스 부서에 배치시키게 되었고 그녀의 업무도 점점 확장되어 운전이나 탄약 관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다른 병사들과 동일하게 트럭을 몰거나 탄약을 관리하는 일을 했으며 흙바닥에 앉아 타이어를 바꾸고
보닛을 열어 엔진을 수리하는 일을 합니다. 결국 1945년 5월 8일 독일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공식적으로 종식하게 됩니다.

[2차 세계대전 영국]

영국은 제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 되었으나 과거의 대영제국의 위상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은 분리되어 독립하였고 그 후 실론, 버마, 말라야, 이집트, 로디지아가 잇달아 독립하게 됩니다. 한때 영국은 전 세계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으나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일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조지 6세는 1949년 연국연 방 국가들의 수장으로 추대되었으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으며 1952년 2월 6일 마침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날 엘리자베스 2세는 왕위를 이어받게 됩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스물다섯이었습니다.

[영국 국민의 정신적 지주였던 엘리자베스 2세] 
엘리자베스 2세가 여왕으로 즉위한 이후로는 영연방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뉴질랜드, 인도 남아프리카 등지를 방문하면서 외교 활동을 활발히 펼쳤습니다. 또한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 등으로 대영제국이 해체되면서 약화되어가던 영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드러내지 않으며 입헌군주로서 신중하게 행동하였으며 활발한 자선과 후원활동을 하였습니다.
또한 윈저성 대 화재 당시 복구 비용을 세금으로 쓰이는데 국민들의 질타가 커지자 스스로 왕실의 면세 특권을 폐지하는 등 스스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며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존경과 경의를 받게 됩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 교통사고]
하지만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의문의 교통사고로 인해 영국 왕실은 국민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게 됩니다.
그 이유는 당시 찰스 3세 왕세자는 다이애나와의 결혼 전부터 지금은 부인인 카밀라라는 여인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으며 결국 다이애나는 남편과의 이혼 후 파파라치에게 쫓기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사고 전 찰스 3세의 사주하에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는 의혹과 교통사고 당시 다이애나에 대한 신속한 의료 처리가 되지 않아 사망했다는 의혹이 있었습니다. 이전부터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 왕실의 권위와 기품에 역행하는 다이애나의 행동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순탄치못한 결혼생활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다이애나의 사망 사건으로 그 비난은 찰스 3세와 엘리자베스2세 여왕으로 향하였으며 왕실 폐지론까지도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장수]
엘리자베스 2세는 향년 96세 선왕인 조지 6세가 1952년에 사망함에 따라 1952년부터 2022년까지 70년 214일로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하였고 재위기간 동안 총 15명의 영국 총리를 승인한 여왕입니다.
엘리자베스 2세가 오랜기간 왕위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대략 이렇습니다.


1. 25세의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라 96세까지 장수
2. 정치체제가 입헌군주제이므로 정치적으로도 논란이 될 일이 없다. 만약 전제군주제였다면 오래 왕위에 앉아있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3. 여왕 스스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모범을 보이며 다이애나 사망사건을 제외하고는 영국 왕실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습니다. 


역대 군주 중 2016년 10월 13일 태국 국왕 푸미폰 아둔야뎃이 재위 70년 126일로 사망하고, 2015년 1월 23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이 향년 90세로 사망함에 따라 2016년 이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가장 오래 재위한 군주가 되었다.

[엘리자베스 2세 서거]
9월 8일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은 19일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치러졌습니다.
이 장례식에 우리나라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의 주요 정상과 왕족 등 2천여 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아들인 찰스 3세가 영국의 왕좌를 이어받게 되었으며 런던에는 수백만명의 장례 행렬과 각국의 조문 외교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서거 이후로의 입헌군주제 폐지 논의가 나오는 가운데 찰스 3세의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됩니다.

군주제 (입헌군주제, 절대군주제)
왕이 나라를 통치하는 국가가 전 세계에 약 25% 정도 있다고 합니다. 
헌법을 만들어 실시하는 군주제로 나라의 지도자인 군주의 권력을 헌법으로 제한하는 정치체제인 입헌군주제와 
대표적인 입헌군주제 국가로는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요르단, 부탄, 타이, 일본 등이 있다.

군주가 국가 통치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는 절대군주제가 있습니다.
절대군주제인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바티칸 브루나이 아랍에미리트 오만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 등이 있습니다.

이미 입헌 군주제가 자리 잡은 상태인 영국에서 엘리자베스 2세는 정치적 실권은 없었으나 영국으로의 탈식민화가 진행되며 영국의 권위가 실추될 때 영국 연방의 국가들을 방문하며 본인의 영향력으로 영국을 위해 힘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입헌군주제 폐지
엘리자베스 여왕이 영국을 통치하면서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 북아일랜드 분쟁, 구소련의 해체, 홍콩의 중국 반환 그리고 가장 최근에 뜨거운 감자였던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하게 된 브렉시트 등 현대사에 많은 굴곡을 겪은 산 증인이기도 하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이 숨진 이후로 영국은 입헌군주제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 즉슨 영국의 왕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기 때문이고 그리고 그 돈은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혈통에 의한 신분 세습제 또한 민주주의의 원칙에도 위배되기 때문에 입헌군주제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늘 알게 된 지식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E0 yP4 Bg1 ze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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